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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창법

판소리 창법의 영역(領域)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넓은 뜻으로서의 창법에 대한 개념을 명백히 해둘 필요가 있다.
전장에서 살펴본 창조는 창의 조격을 분류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유파(流 波)란 말하자면 좁은 뜻으로서의 창법을 말한다.
즉, 같은 ‘우조’라도 이 유파에 따라서 그 창법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넓은 뜻으로서의 창법에는 가풍(歌 風)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명창들의 스타일이 있고, 발성 기관을 독특하게 구사하는 발성법이 또 복잡하게 발달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판소리 음악에 있어 넓은 뜻으로의 창법에는 창조. 유파. 가풍. 발성법 등의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이해하여야만 판소리 음악을 정확히 이해 할 수 있다.
특히 창조와 가풍에 대해 명백한 구분을 짓지 않을 때에 여러 가지 혼동을 빚어낼 우려가 있음은 후술할 유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그 동안의 사정을 웅변으로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어쨌든 판소리의 유파는 크게 둘로 나누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이 두 가지 유파를 판소리 분야에서는 전통적으로 동편제(東 便 制)와 서편제(西 便 制)로 나누어 일컬어 왔다.
우선 이 동. 서편제의 성립 과정을 살펴보면 <조선창극사>에서는 그러면 동서의 유래가 여하히 분류된 것이냐 하면 송흥록(宋 興 祿)의 법제를 표준하여 운봉. 구례. 순창. 흥덕 등지 이쪽을 동편이라 하고, 서는 박유전(朴 裕 全)의 법제를 표준하여 광주. 나주. 보성 등지 저쪽을 서편이라 하였다. 그 후에는 지역의 표준을 떠나서 소리의 법제만을 표준 하여 분파되었다고 하였으며, <창악대강>에서는, 동서편의 유래는 송흥록 법제를 표준 하여 운봉. 구례. 순창 등지를 동편이하 하고, 박유전 법제를 표준 하여 광주. 나주. 보성 등지를 서편이라 하고... 어느 한 지역을 구분하고 인물을 표준 하여 동서라 운위하기보다도......라 하였다.
이러한 기술들로써 알 수 있듯이 동. 서 유파의 성립 과정은 전라도 지방의 지리산 산맥 또는 섬진강 물줄기에 의해 지역적으로 구분되는 특정 지역에서 널리 유포 되던 창제(唱 制)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역적인 개념이 희박해지고 순연한 유파의 명칭으로 전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는 박유전보다 송흥록이 한 세대 앞섰기 때문에 서편제는 성립 연대가 동편제보다 늦게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잠깐 시사했듯이 종래 이 유파의 특징을 규제하는 창제를 전장에서 분석한 창조와 혼동하는 경향이 있음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즉 논자에 따라서는 “동편제=우조” “서편제=계면조”라는 기술(記 述)이 있으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견해다.
왜냐하면 동편제라고 해서 우조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고, 서편제라고 해서 꼭 계면조로만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예증하면, 동편제의 영수인 송흥록의 직계 계보라 할 송만갑(宋 萬 甲) ‘흥부가’에서 우조만이 아니라 계면조가 얼마든지 나타나며,
또 서편제의 계보를 순수하게 이어 온 정권진(鄭 權 鎭)의 ‘심청가’가 꼭 계면조로만 된 것이 아니라 우조가 얼마든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증을 하는 그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창조와 유파는 분명히 이질적인 것인데도 그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에 그러한 생각이 옳은 것이라면 동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령만하는 소리가 될 것이고 서편제는 울고만 있는 소리가 되게 마련이지만, 그런 판소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창조와 유파는 결코 등식 관계를 이루는 것이 나니라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파와 창조가 구분되어 마땅하듯이 유파와 가풍 또한 구별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종래 ‘설렁제’니 ‘경드름’이니 ‘석화제’니 ‘중고제’니 하는 것들을 대부분의 논자들은 유파의 차이로 보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 명칭에 “○○제”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지 엄격히 따져 결코 유파는 될 수 없다.
다만 지난날의 명창 대가가 개발한 독특한 스타일로 후세의 명인들이 방창(倣 唱) 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동편제와 서편제는 결코 서로가 출입하고 교차하지는 않지마는 동편제라고 해서 ‘경두름’이 끼지 못하라는 법이 없고, 서편제라고 해서 ‘설렁제’(종래 이 ‘설렁제’는 ‘덜렁제’라고도 써왔으나 본 글에서는 ‘설렁제’로 통일하기로 한다.)가 끼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판소리에서의 창조와 유파, 그리고 유파와 가풍은 서로 혼동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것은 판소리의 음악적인 측면을 이해하는데 선행되어야 할 전제이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종래의 업적을 발판으로 하여 동. 서편 유파의 특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나아가서는 종래 대부분의 논자들이 독립된 유파로 이해했던 몇 가지 특수한 창법을 ‘가풍’ 및 ‘기교’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판소리 2대 유파의 특징

동편제

동편제 창제는 한마디로 “막자치기 소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막자치기”란 창법에서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목으로 우기는”소리를 말한다.
따라서 동편제 소리를 제대로 하려면 선천적으로 풍부한 성량을 타고나야 한다. 동편제의 이와 같은 특징은 요컨대 비기교성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다.
대체로 동편제에서는 장단의 운행에 있어서 그 템포가 매우 빠르다. 기교와 수식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장단에 맞추어 말(言 語)을 던지듯이 빠 나간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장단도 ‘잔가락’(복잡한 기교를 부리는 배리에이션) 없이 “대마디 대장단”(잔가락 없이 원박만 치는 장단)이 주축이 되고 그 ‘대마디 대장단’속에 빈틈없이 사설을 채워 한 마루의 장단으로 소리 한 꼭지씩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장단의 마루에 충실하고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동편제에서는 자연히 발림(몸짓)을 할 여유가 없어서 연기면 에서는 건조한 인상을 면치 못한다.
그 대신 목으로 우겨대는 특징을 살려서 장단마다 끝을 졸라 때기 때문에 건조한 연기를 커버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소리의 끝을 졸라 때게 되면 자연히 긴장이 풀리지 않고 다음 소리를 기대하게 되므로 ‘발림’ 과 같은 연기에는 관심이 흐려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 이처럼 동편제가 비기교적으로 건조한 연기로 일관된다는 것은 그만큼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예술 형태가 기교면에서 고졸(古 拙) 하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 동편제는 판소리 예술이 발생하여 독립된 새로운 예술 형태로 형성되었던 당시의 수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정통적인 유파로 규정지어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김명환의 동편제 소리에 대한 비유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동편제 소리는 어부들이 쓰는 그물 중에서 그물코가 큰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그물코가 크면 자연히 자질구레한 고기는 다 빠져나가고 큰 고기만 그물 속에 남는 것과 같이 동편제 소리는 대충대충 거뜬거뜬한 인상을 주면서도 야멸찬 소리로 이어지는 그러한 창법이라 할 수 있다.

서편제

이 서편제는 동편제의 그러한 고졸성(古 拙 性)을 극복하여 이루어진 기교파를 이름이다.
동편제가 선천적인 음량에 의존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서편제는 후천적인 노력이 그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가공(加 工)과 수식으로 소리를 “만드는”유파라는 뜻이 되겠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풍부한 음량을 타고 나지 않았더라도 절묘한 기교로써 그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창법이다.
이처럼 소리에 기교를 부리자니까 자연히 템포가 늘어질 수밖에 없다. 동편제처럼 거뜬거뜬히 소리를 하다가는 “갈 데를 다 못 간다.”는 결과를 빚어내게 마련이므로 기교를 부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요구할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서편제에서는 소리가 늘어지고 템포가 늦다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장단도 “대마디 대장단”으로는 맛이 없어져서 자연히 ‘잔가락’이 많이 끼어들게 마련이고, 소리를 끌고 나가는데 따라서 장단을 달아 주지 않을 수 없을 수 없게 된다.
바꾸어 말하여 동편제에서는 한 장단에 소리를 차곡차곡 해결해 나가지만 서편제에서는 소리 한 꼭지를 몇 장단씩 끌고 나가다가 어떤 마디에 이르러서 소리를 “만들고”다시 끝을 맺는 수법을 취한다.
이렇게 소리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자연히 ‘발림’도 풍부하여지게 마련이어서 연기면에서도 발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고졸하고 소박한 동편제의 경지를 개혁한 이 서편제는 그만큼 기술적인 면에서 향상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서편제는 정통적인 창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발전된 유파라고 규정지을 수 있겠다.
그러나 동편제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서편제를 이단으로 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서편제에서는 동편제를 고졸한 수법에 대해 소리를 “장작 패듯 한다.”고 빈정대기도 한다.
다시 김명환의 서편제 소리에 대한 비유를 인용해 보면,서편제 소리는 어부들이 쓰는 그물 중에서 그물코가 작은 그물로 잡았을 때에 굵은 고기잔고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든 고기를 다 잡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동편제가 “대충대충 거뜬거뜬” 하다면 서편제는 “곰상곰상 차근차근”한 인상을 주는 유파라고 할 수 있겠다.
유파와 가풍 및 기교의 구분
앞에서 판소리의 2대 유파가 지니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판소리의 유파에 대하여 <조선창극사>에서는 전술한 동편제와 서편제 이외에 다시 ‘중고제’와 ‘호걸제’가 더 있는 것으로 기술하였고, <창악대강>에서는 2대 유파 이외에 다시 ‘중고제’ ‘경도림제’ ‘석화제’의 3개 유파가 더 있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문헌에서 유파로 본 창법은 유파라기보다는 오히려 가풍(歌 風)또는 기교(技 巧)라는 이름으로 처리할 수 있는 특정한 대가(大 家)의 스타일로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유파와는 달리 가풍 또는 기교로 규정해야 할 몇 가지 이유를 지적해 둔다.
첫째로 가풍 또는 기교라는 이름으로 처리해야 할 일련의 창법들은 모두가 지난날 명창으로 알려진 특정한 대가가 개발한 특수 창법으로서 이른바 ‘더늠’(어느 대가의 장끼로 후배들이 즐겨 부르는 대문)으로 오늘날까지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로는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것은 그 유파의 성격이 뚜렷하여 자초지종 통일된 창법으로 불리지만 가풍이나 기교는 일관된 창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드름제’가 만일에 유파라면 소리 한 바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경드름제’가 만일에 유파라면 소리 한 바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경드름제’로 불러야 하는데,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대문에 국한하여 ‘설렁제’니 ‘석화 제’니 ‘경드름제’니 하는 것들이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셋째로는 이러한 가풍 또는 기교는 앞에서 말한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릴 것 없이 유파를 초월하여 즐겨 부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동편제나 서편제이 경우를 보면 이 두 유파는 매우 배타적(좋은 의미로)이어서 서로가 뒤섞이는 일이 없다.
그러나 ‘경드름제’의 경우를 보면 어는 소리의 특정한 대문에 이르면 동편제에서나 서편제에서나 똑같이 이 ‘경드름제’로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본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이 가풍 또는 기교에 속하는 특수한 창법들은 독립된 유파라기보다는 어느 대가가 개발한 독특한 스타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 서편 어느 유파에서나 자기네의 창제를 제쳐놓고 이른바 ‘더늠’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대문에는 꼭 특수한 가풍을 인용하여 부르게 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가풍 또는 기교라 인정할 만한 특수한 창법에는 <조선창극사>나 <창악대강>에 소개된 ‘중고제’, ‘경드름제’, ‘석화제’ 이외에 ‘덜렁제’ 라는 것이 있음은 이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바, <조선창극사>에서 이름만 들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 ‘호걸제’라는 것이 혹시 이 ‘덜렁제’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여겨지나 단정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에서 종래의 논자들은 판소리의 유파를 4개 내지 5개로 간주했던 방법을 지양하고 판소리의 유파를 2대 유파로 분류한 점과 나머지는 그것이 유파라기보다는 가풍 또는 기교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시도를 제창했거니와,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시도이지 꼭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결정론을 펴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자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추구한 끝에 결론은 내려져야 할 것이나 다만 판소리 예술은 그 내용만이 남아 있고 이론적인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유파와 가풍과 기교는 구분되어야 하겠다는 것을 제의해 본 것이다. 앞에서 유파 즉, 창제와 가풍 또는 기교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근거를 밝혀본 바 있다. 즉<조선창극사>나 <창악대강>에서 중고제. 경드름제. 석화제. 호걸제와 같은 것은 유파라기보다는 가풍 또는 기교로 간주해야 할 거이라고 제의해 보았다. 그런데 필자가 보는 바로는 이 네 개의 특수한 창법은 그것을 다시 ‘가풍’과 ‘기교’의 두 계열로 나누어 정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즉 석화제.설렁제, 경드름제의 세 가지 창법은 지난 날 특정 명창이 새로 개발한 대가의 독특한 스타일로서 ‘가풍’이라는 이름으로 처리해야 할 성질의 것이고, 다시 ‘중고제’ 와 ‘반드름제’ ‘붙임새’는 ‘기교’라는 이름으로 처리해야 할 성질의 것을 보았다.
이제 이 가풍과 기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판소리의 가풍

설렁제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설렁제’는 동편제나 서편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설렁제로 부르는 소리 바닥은 없고 동편제 서편제를 막론하고 어떤 레퍼토리의 특정한 대문에 이르면 이 설렁제로 부르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설렁제는 유파가 아니라 어느 특정한 대가가 개발한 스타일, 즉 가풍으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설렁제를 개발한 사람은 영조시대의 명창 권삼득(權 三 得,1771~1841)이라고 전하여진다.
권삼득은 원래가 광대 출신이 아니라 안동 권 씨의 양반의 후예로서 글공부보다는 소리공부에 더 흥미를 가져 끝내는 광대 행세를 한 이른바 “비갑이”(광대 계급 출신이 아닌 양반계급 출신의 광대를 말한다)에 속하는 천재적 성악가였다고 보인다. 그는 영. 정. 순조 연간에 활동했던 이른바 8명창 중의 가장 선배로서 고종조 판소리 평론의 대가 신재효(申 在 孝)는 ‘광대가’에서

“권생원(權 生 員)”사인(士 仁)씨는 천층절벽 불끈 솟아 만장폭포 월렁 꿜꿜......”

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신재효의 이 평언을 빌어 추측컨대 그의 창법은 매우 격렬하고도 청고(淸 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타고난 그러한 재질은 지난날의 전통적인 창법에만 만족할 수가 없어서 이 ‘설렁제’를 개발한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이 설렁제는 일명 ‘호걸제’라고도 할 만큼 호기 등등한 가풍으로서 그 오리지널(起 源)은 ‘권마성(權 馬 聲)’에서 나왔다고 한다.
(김명환 담).
권마성은 신분이 귀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행차할 때 말이나 가마 앞에서 하인들이 가늘고 긴 소리로 부르는 일종의 신호 소리인데, 매우 호기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현재 전창(傳 唱)되는 것으로는,
‘춘향가’에서는 군노사령이 춘향을 잡으러 나가는 대문.
‘흥부가’에서는 놀부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문.
‘적벽가’ 에서는 군사들의 설움타령 중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흥보가’의 놀부 제비 후리는 대문은 후세의 전 창자들이

“이 대문은 옛날 8명창 중의 한 사람인 권삼득 선생의 더늠인디 ......”

하며 그의 대표적인 더늠으로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석화제

이 창법의 스타일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듣는 ‘가야금병창제’와 비슷한 인상을 풍기는 가풍으로서, 명랑하고 거들거리는 성음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현행 판소리 중에서는 ‘춘향가’의 천자 뒤풀이. ‘수궁가’의 토끼 화상을 그리는 대문과 날짐승들의 상좌 다툼 등에서 이 석화제의 가풍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석화제의 창시자에 대해서는 명백한 증거를 찾기가 힘들다. <조선창극사>에서는 김제철(金 齊 喆)조에, 김제철은 충청도 출생으로 순. 헌. 철 3대간 인물이며 송 모 염 고(宋,牟,廉,高)의 후배이고 주덕기(朱 德 基)와 동배인데, 사계의 대가이다. 심청가를 잘 했고 특히 석화제(가야금 병창제와 근사)를 잘 불렀다 한다.

라고 하여 석화제를 잘 불렀다고만 하였고 창시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창악대강>에서는 ‘석화제’라는 항목에 순조~철종간의 명창인 김계철(金 啓 喆)에 의하여 비롯되었다 한다. 이 제(制)는 가야금 병창제와 비슷한 것이다.

라고 하여 김제철이 아닌 김계철로 그 이름을 표기하고 석화제의 창시자로 내세우고 있다.
김제철과 김계철이 이명동일인(異 名 同 一 人) 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인지도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석화제의 명인설과 창시자설도 얼른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찾을 길이 막연하다.
게다가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제보자인 김명환은 이 석화제의 창시자를 신 만엽(新 萬 葉)이라는 이설을 내세워 필자를 더욱 당혹케 한다.
그의 제보에 따르면 과게에 그가 접했던 많은 명창들이 석화제는 신 만엽이 시창하였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조선창극사>에는

신 만엽은 전북 여산 출생으로 후에 고창군에 살았다. 김제철 박유전과 동배로 8명창 중의 1인이다. 가조가 연미부경(軟 美 浮 輕)하여 당시 사람들이 사풍세우(斜 風 細 雨)의 칭호를 주었는지 모르거니와 그 성망(聲 望)이 일대를 풍미하였는지라, 내 어찌 경솔히 붓을 가하랴.라고 하였는바, ‘사풍세우’라는 칭호와 ‘연미부경’이라는 창법으로 미루어 석화제의 창시자가 신 만엽 이라는 이설이 오히려 타당성이 있을 법도 하나, 확증을 얻기 전에는 단정을 짓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다.

경드름제

<창악대강>에서는 ‘경도림제’(보통 ‘경드름제’라고 한다.)하고 하여 역시 하나의 유파로 간주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순조~철종간의 명창인 염 계달(廉 季 達) 에 의하여 비롯되었다. 이제는 염계달의 출생지가

경기도 여주이므로 그의 특조를 일러 경도림이라 한다.

이 설명으로 경드름제는 염계달의 창시인 것이 분명하며 그의 태생이 경기도이기 때문에 그의 특조를 경도림이라 하였다는 것은 곧 그의 창법에 다분히 경기도 토리 (음악적인 사투리)가 짙다는 것을 뜻한다 하겠다.
현행 판소리에서 이 경드름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문은 ‘춘향가’에서 이도령이 대화가 내용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다. 춘향가 춘향모 또는 향단이나 방자는 남원 사란인데 반하여 이도령은 서울 양반이기 때문에 호남조(음악적인 가락) 로 부르기보다는 경기조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데서 시작된 염계달의 독특한 스타일이 아니었던가. 추측이 된다.
이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확정된 후로 ‘수궁가’에서는 토끼가 용궁으로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살아 나와 별주부에게 욕설을 퍼붓는 대문에 응용이 되었고 또 ‘흥부가’에서는 흥부의 박속에서 나온 비단을 두고 부르는 ‘비단타령’에 역시 경드름이 나오는 것을 본다.
이상에서 예시한 대문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인상은 분명히 호남조가 아닌 경기조의 스타일이다.
어떻게 보면 경기 민요의 가락이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들으면 정악(正 樂)에서 부르는 가곡(歌 曲)의 성조가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호남조가 아닌 경기조이기 때문에 동편제의 후계자였던 송만갑은 서울의 문벌 사저에 초청을 받아 소리할 때는 서울 사람의 기호에 맞도록 이 경드름제를 많이 섞어서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경드름제는 유파라기보다는 가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판소리의 가풍

중고제

앞에서 살펴본 가풍과는 달리 창법에서 독특한 기교를 부리는 것으로 중고제(中 高 制)를 들 수 있다.
이 중고제도 종래에는 유파로 간주하여 <조선창극사>에서는, 중고제는 비동비서(非 東 非 西)의 그 중간인데 비교적 동에 가까운 것이다.라고 하여 매우 애매한 설명을 하고 있다. 또 <창악대강>에서는, 동편 서편도 아닌 한 중간제이다. 성음의 고저가 분명하고 명확히 구분하여 들을 수 있으며, 또 소리를 낼 때에 평평하게 시작하여 중간을 높이고 끝을 다시 낮추어 끊는 것이다.고 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고제란 근본적으로 성량을 풍부하게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흉내도 못내는 창법상의 기교이다 <창악대강>에서도 구체적으로 지적했듯이 소리의 내두름(初 頭)은 비교적 낮은 음정에서 시작하여 차츰 높은 음정으로 들어 올려 창하는 사람의 성량이 한계점에 달하였을 때에 다시 음정을 낮추어서 부르는 기교를 이름이다.
이 중고제의 명인은 모흥갑(牟 興 甲)이었다고 하며, 근세에는 송만갑이 역시 이 기교를 많이 썼으나, 근래에 중고제의 기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렵게 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반드름제

중고제가 음정을 위로 들어 올리는 고저에 관한 기교인 반면에 반드름제는 한 마루의 장단 속에 문학적인 사설을 길게 뻗치기도 하고 짧게 몰아붙이기도 하는 장단에 관한 기교를 이름이다.
이 기법은 소리의 경지가 어느 정도 숙달해지면 이른바 “대마디 대장단”(장단의 박자와 소리의 사설이 규칙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는 무미하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 기교는 소리에 미숙한 동안에는 불가능하고 높은 수준에 이른 다음에야 가능하여, 듣는 사람에게도 단조로운 데서 오늘 싫증을 덜어 주는 구실을 한다.

붙임새

위에서 말한 ‘반드름제’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아울러 음악적인 미감(美 感)을 더하기 위하여 이 ‘붙임새’의 기교를 쓰는 것을 본다.
이 ‘붙임새’란 장단과 문학적인 사설과의 관계인바, 말을 놓는 자리에 따라서 ‘엇붙임. 잉아걸이. 완자걸이. 꾀대죽’등으로 불리는 기교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교는 말로써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 이름만 열거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교가 가장 많이 적용되어서 짜인 대표적인 것으로 ‘흥부가’ 중에서 김창환(金 昌 煥)제 “제비 노정기(路 程 記)”를 참고로 들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