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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구성

판소리의 어의
‘판소리’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선 우선 ‘판소리’란 말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판소리’란 말은 「판+소리」로 된 복합명사이다.
‘판’이란 명사로 결합되는 다른 복합명사로는 ‘씨름판’ ‘노름판’ ‘놀이판’등이 있는데, 이런 ‘판’은 우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굿〕이란 뜻과 아울러 ‘씨름, 노름, 놀이’라는〔특수한 행위가 운영되는 곳〕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소리’는 무엇을 뜻하는 말이겠는가. 우선 우리의 전통 음악 중 성악을 일컬을 때에 ‘노래’라는 말과 ‘소리’라는 말을 구분하여 쓰는 것을 본다.
가곡, 가사, 시조를 비롯하여 ‘경기잡가’, ‘서도잡가’등은 대부분 ‘노래’라고 일컫는 반면, 이 ‘판소리’만은 ‘남도소리’라고 한다. 같은 ‘남도소리’라도 ‘성주풀이’, ‘흥타령’, ‘육자배기’등은 소리라고는 하지 않고 오직 ‘판소리’에 한해서 ‘소리’라고 불러 왔었다.
따라서 “소리 한 자리 하시오!”라고 했을 때와 “노래 한 마디 하시오!”라고 했을 때 청하는 사람의 요구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소리’가 왜 이렇게 ‘노래’와 구별되는 것일까. 우선 ‘노래’라 하면 〔인간의 감정을 음성으로 표현하는 음악〕의 일종이라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리’는 ‘노래’보다는 광범위한 개념을 내포한다.
우선, ‘소리’의 음성적 소재(素 材)로써는 ‘인간의 음성’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의 음향까지 동원한다.
아울러 인간의 음성에서도 단순한 ‘감정의 표현’ 뿐만이 아니라 ‘울음소리’, ‘웃음소리’등을 포함한 다채로운 소재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소리’는 ‘노래’에 비해서 그 표현 양식이 훨씬 복잡하고, 그것을 용어 자체가 잘 나타내고 있다 할 것이다.
이렇듯 ‘소리’ 가 ‘노래’에 비하여 복잡한 소재를 표현하는 성악이기에 그만큼 그 내용도 복잡해진다.
성악의 악곡이 복잡한 내용을 표현한다는 것은 곧 그 성악의 내용인 문학 작품의 내용이 복잡하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의 내용인 문학 작품은 서정적인 작품이기보다는 서사적인 작품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노래’는 내용이 비교적 단순한 서정시를 성악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소리’는 문학적인 면에서 그 내용이 복잡한 서사시를 성악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구분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논거를 ‘판’이란 말의 뜻이〔많은 사람이 모여서 어떤 특별한 행위를 운영하는 곳〕이라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즉, 판소리는 ‘소리판’에서 부르는 ‘소리’, 즉〔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성악으로 부르는 서사시〕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판’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판’은 서사시로서의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줄거리를 갖춘 것〕이라야 한다는 조건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판소리’는 〔자초지종 일관된 줄거리를 갖추고 있는 이야기를 성악으로 불러내되, 많은 사람이 모인자리에서 공연되는 예술 활동〕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 같다.
판소리의 무대적 구성
앞에서 우리는 ‘판’을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일차적인 뜻을 풀이한 바 있었다.
따라서 ‘판소리’는 ‘많은 사람’즉 구경꾼(관중 또는 청중)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는 예술 활동이다.
관중을 전제로 하는 예술 활동이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무대 예술임이 분명하다.
무대 예술에는 반드시 배우가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판소리’란 청중 앞에서 배우가 서사시를 성악으로 공연하는 한국의 독특한 예술형태라고 하겠다.
그런데 종래의 대부분의 논자들은 판소리에 있어서 배우의 공연 형태를 1인창의 독연(獨 演)이라 보아 왔다.
이 경우 독연하는 배우는 창을 맡은 배우를 일컬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창만으로 성립될 수는 없다.
창을 맡은 배우 못지않게 중요한 구실을 맡고 있는 고수(鼓 手)가 없어서는 판소리의 무대는 성립될 수 없다.
이른바, ‘무장단’(고수 없이 창만 부르는 경우)은 어디까지나 변칙적인 공연이고, 원칙적으로는 반드시 고수가 있어야 판소리의 ‘판’은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판소리의 공연 형태는 독연물이 아니라 창자와 고수가 공연(共 演)하는 2인 무대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써 내려오던 관용구로 “일고수이명창”이란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 뜻은 제 아무리 명창이라도 고수가 시원찮으면 명창으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고수는 배우로서의 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달선(尹 達 善)은 ‘춘향가’를 한역(漢 譯)한 ‘광한루악부(廣 寒 樓 樂 府)’의 서문에서 소리판의 광경을 ‘일인입 일인좌(一 人 立 一 人 坐)’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분명히 판소리의 배우가 두 사람이라는 뚜렷한 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인들의 옳은 생각과는 달리 근래의 논자들이 판소리 공연 형태를 독연물로 보는 것은 분명한 오류라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 더 고려해야 할 문제는 ‘소리판’에 있어서의 청중(구경꾼)의 구실이다.
서구식 극장에서의 청중은 그야말로 단순한 청중 이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소리판’에 있어서의 청중은 무대와 객석이라는 격조감(隔 阻 感)을 초월하여 같은 ‘판’에 참여하지 않은 서양식 음악회나 오페라를 감상하는 예절에 젖어 있는 현대의 젊은 청중을 상대로 공연하는 판소리 출연자들은 대부분이 “답답하다”고 불평을 털어 놓거나, “중치가 막혀서 소리를 할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을 흔히 듣는다.
이런 출연자들의 불평이나 하소연은 청중들이 ‘판’속으로 뛰어 들지 않는 한 부자연한 ‘판’의 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판소리에서 고수가 빠져서는 ‘판’이 성립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중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여되어도 판소리의 ‘판’은 성립 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하겠다.
판소리의 형태적 구성
앞에서 우리는 소리판에 있어서의 구성 요소를 「창자+고수+청중=판」이라는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세가지요소를 생각해 보았다.
다음에는 ‘소리판’이 아니라 ‘판소리’를 구성하는 네 가지의 중요한 요소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판소리의 주연 배우인 창자가 맡은 중요한 요소는 ‘창’, ‘아니리’, ‘발림’ 의 세가지요소가 있고, 공연자인 고수와 청중이 맡은 요소로 ‘추임새’가 있다.
첫째로 ‘창’은 말할 것도 없이 판소리 예술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음악적인 요소를 이름이다.
이 창에는 우선 창조(唱 調)라는 기본적인 창법의 구분이 있다.
평조(平 調), 우조(羽 調), 계면조(界 面 調)와 같은 창조가 곧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유파에 따라서 동편(東 便)제니 서편(西 便)제니 하는 갈래가 갈라지는데, 이것은 표현 기법의 차이를 이름이다.
그리고 음질에 따라서 ‘통성’(강약이나 명암의 변화 없이 마구 지르는 소리)이니 ‘수리성’(쉰 목소리처럼 컬컬한 목소리)이니 ‘천구성’(튀어 나는 목소리, 즉 선천적으로 타고난 명창의 성음)이니 하는 것들을 들 수 있다. 게다가 발성법에 따라서 ‘푸는 목’, ‘감는 목’, ‘방울 목’, ‘엮는 목’ 등을 비롯하여 약 40종 가까운 목 성음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게다가 ‘더늠’ 이라고 하여 과거 명창 대가가 개발한 특정한 대목을 익혀야 하기도 한다.
판소리 창자는 이러한 창법, 표현기교, 음질, 발성법 등을 수련하면서 한편으로는 박자의 변화인 장단을 정확하게 익혀야 한다.
판소리에 있어서 장단의 변화는 단순한 박자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 표현의 변화를 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주인공의 성격, 사건의 진전, 극적 전환의 표현까지도 이 장단의 변화로써 전개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 수많은 명창들이 판소리의 전수를 터득하여 일가를 이루는 데는 자그마치 30년이란 오랜 수련을 쌓았다고 한다.
판소리사의 불후의 명성을 기록한 명창치고 수업과정에서 무수한 고초(苦 楚)를 겪은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다음에는 ‘아니리’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아니리’라는 것은 판소리의 내용을 ‘창’이 아닌 ‘말’ 즉 회화체나 장단을 떠난 ‘창조’(또는‘도섭’이라고도 한다)로써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아니리’는 사건의 변화, 시간의 경과, 작중 인물들의 대화, 주인공의 심리 묘사, 작중 인물의 독백 등을 전달하고 창자에게 휴식하는 기회(이것을 ‘숨을 돌린다’고 한다)를 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발림’은 ‘창’이나 ‘아니리’와 같은 언어에 의한 표현이 아니라 ‘몸짓’에 의한 표현을 뜻한다.
서구식 연극에 있어서의 ‘액션’도 ‘리듬’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판소리의 ‘발림’은 음악에 수반하는 ‘몸짓’이기 때문에 단순한 리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용적 이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무용이 아니기 때문에 행동에 있어 극단적인 축약성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다.
끝으로, ‘추임새’는 고수와 청중이 맡아 하는 구실로서 ‘소리판’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형성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격을 허물고 배우와 청중의 호흡을 조화시킴으로써 ‘판’의 같은 어귀로 창자를 격려함으로써 일종의 무대 효과를 나타낼 수 있고 청중 스스로 창자가 부르는 창(唱)과 창(唱)속에 녹아 흐르는 사설의 내용 속에 흥겹게 화합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 온다.
그런데 이 ‘추임새’는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추임새’를 하는 ‘자리’가 따로 있기 때문에 상당한 수련을 쌓고서야 제대로 ‘추임새’를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