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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창조

전통 음악에서의 창조
우리는 이미 판소리가 그에 앞서는 모든 전통 음악의 정수를 종합 섭취하여 형성된 새로운 예술 형태임을 살핀 바 있었다. 이제 우리의 그러한 논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논지를 우선 그 창조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그 이유는 판소리 음악에서 가장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 창조(唱 調)이기 때문이다.
즉 문학적인 사설의 내용을 어떻게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분기점 평조. 우조 . 계면 등 창조의 변화와 그 선택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소리에서 말하는 평조니 우조니 계면이니 하는 창조의 명칭이나 구분은 판소리만의 있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 형성 이전의 전통음악에서 이미 널리 불리었던 창조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의 명칭은 성가(聲 歌)의 창조에서 뿐만이 아니라 악기의 조현법(調 絃 法)에서도 쓰였던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악학궤범>에 나오는 악기의 조현 방법에 따르는 조율의 변화는 필자의 능력 때문에 잠시 덮어 두기로 하고, 성가의 창조에 관한 전통음악에서의 규정은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 각종 문헌에 기록된 창조의 규정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구체적인 내용의 소개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앞으로 인용할 문헌에 대하여 간단하게 언급하고 각 문헌의 약칭(略 稱)을 정하기로 하겠다.
성가의 창조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으로 필자가 접한 것은 김수장이 편찬한 가집<해동가요>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각조체격’(角 調 體 格)에 나타나는 기록이다.
이 문헌의 약칭은 ‘해동각조(海 東 各 調)’로 한다. 다음으로는 박효관. 안민영 등이 편찬한 가집<가곡원류>에 나오는 ‘논영가지원’(論 詠 歌 之 源)이 있다.
이 문헌의 약칭은 ‘가원논가’(歌 源 論 歌)로 한다.
또 같은 책에 논곡지음 이 있다.
앞으로 가원논곡으로 약칭한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편자 미상의 <화원악보(花 源 樂 譜)>으 ‘조격(調 格)’이 있다.
앞으로 ‘화원조격’(花 源 調 格)이라 약칭한다.

평조

우선 ‘해동각조’ 에는 평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순(舜)임금께서 남훈전(南 薰 殿)에 계시면서 오현금(五 絃 琴)을 타시고 백성의 걱정을 풀어 주시는 곡이다. 성률(聲 律)은 정대(正 大)하고 화평하다.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부족하였던지 편찬자는 다시 다음과 같이 덧붙이기도 하였다.
슬프되 편안하고 웅심하며 화평하다. 마치 황종(黃 鐘)이 한번 울리니 만물이 모두 봄을 만남과 같으니라.
다음 ‘가원논가’에서는 ‘평조’를 오행(五 行)으로 풀이하여 철학적인 설명을 덧붙여 그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평조는 토성(土 聲)에 딸렸으니 웅심하고 화평하다.
그리고 토음이기 때문에 목구멍에서 난다.
따라서 평조는 마치 땅이 두터워서 만물이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형상과 같으니라.
이렇게 오행으로 음악을 풀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나 ‘웅심화평’하다는 말은 평조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비유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평조는 궁에 딸린 토성이니 웅심하고 화평하며, 성률은 정대하다. 황종이 한번 울리니 만물이 봄을 만남과 같으니라. 낙양의 봄 날씨에 소자가 수레를 몰아 백화가 난만한 꽃밭 속을 서서히 말고삐를 당기는 것과 같으니라. 순임금이 남훈전에 올라가 오현금을 타고 남풍의 시를 노래하심으로써 천하가 화평해지는 것과 같으니라.
다시 나아가서 평조의 정대하고 화평한 모습을 아래와 같이 풍경으로써 비유하고 있음을 본다.
달이 하늘 복판에 떠올랐거나 바람이 물결 위에 불어 올 때에 그 맑은 뜻의 맛이 같음을 제 아무리 소인이라도 헤아려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소개한, 평조에 관한 고문헌의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평조라는 창조는 매우 평화로운 가락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락이 평화롭다는 것은 곧 매우 안정된 것임을 뜻한다. 백화가 만발한 꽃밭 속을 말고삐를 느직이 들고 수레를 몰고 갈 때에 느끼는 감각, 또는 한 밤중 달이 하늘 복판에 떠 있는 것을 보거나 한들 바람이 잔잔한 수면을 스쳐갈 때 느끼는 맑고도 시원스런 감각, 이런 느낌이 곧 평조의 격조라는 것이다.

우조

‘해동각조’에는 이 우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항우(項 羽)가 말을 날려 꾸짖는 소리가 우렁차니 만병이 넋을 잃는다.
이어서 그 성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맑고 격하고 장하고 거세다.
그리고 위의 설명으로 부족하였던지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사납게 들어올리기 때문에 청장(淸 壯)하고 격려(激 勵) 하여 마치 한 말이나 되는 옥이 부딪쳐서 깨어질 때에 옥 부스러기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는 것과 같다.
‘가원논가’에서는 평조의 경우와 같이 오행설로써 ‘우조’를 설명하고 있음을 본다.
우조는 수성(水 聲)에 딸렸기로 청장(淸 壯)하고 소창(疎 暢)하다.
우조는 수음(水 音)이라 입술에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부드럽고 순하게 흐름과 같다.
이 말은 우조가 흐르는 물처럼 유순하다는 뜻이 아니라 막히지 않고 시원스럽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항우가 말을 날리니 영웅의 칼이 허리에서 울고 대강(大 江) 서쪽에 공격을 하면 단단한 성이 없다. 항우가 말을 날려 철편(鐵 鞭)에서 빛이 나고 큰소리로 꾸짖으니 수많은 장부의 혼이 날아가는 것 같으니 성률은 청철(淸 澈)하고 장려(壯 勵)하다.
위와 같은 비유들은 모두 우조가 시원스럽고 엄한 가락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계면조

다음 계면조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해동각조’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왕소군이 한나라를 떠나 오랑캐 나라로 들어갈 때에 눈발이 휘날리고 바람은 차게 불어 닥친다.
그리고 그 성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처창(悽 愴)하게 흐느낀다.
더 보충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맑고도 멀어서 애원하고 처창하다. 마치 충성스런 넋이 강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니 남은 원한이 초나라에 가득 찬 것과 같다.
‘가원논가’에서는 이 계면조를 상성(商 聲)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오행설로 설명하고 있다.
상조는 금성에 딸려 애원하고 처창하다. 상조는 금성으로서 이빨로부터 나는 소리다. 그래서 바꿔짐에 따라 숙량한 기상이 있다.
이상과 같은 설명은, 곧 계면조가 애원하고 처절한 가락을 지녔기 때문에 매우 숙연한 인상을 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원논곡’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덧붙여 부연하고 있다.
영위(令 威)가 나라를 떠나서 천년 만에 돌아오니 누누한 무덤 앞에는 모든 물질은 예나 다름이 없으나 사람은 다 모를 사람뿐이더라.
그리고 끝으로 ‘화원격조’에서는 아래와 같이 비유하여 계면조이 성률을 설명하고 있다.
반첩여(班 ? ?)가 장신궁(長 信 宮)에 있으면서 빈 대뜰에는 이끼가 돋아나고 기다리는 옥연(玉 輦)은 이르지 아니하니 해 저물어 꽃잎이 떨어질 제 턱을 괴고 바라본다.
또한, 다음과 같은 시구로써 계면조의 가락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동정호(洞 庭 湖) 서쪽을 바라보니 초강이 나뉘었고 수평선 남쪽 끝에는 구름도 보이지 않는다. 해가 진 장사에는 가을빛이 멀었는데 어느 곳에서 상군(湘 君)을 조문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계면조의 가락은 사람의 마음을 구슬프게 만들어준다는 특색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계면조는 애원하고 처절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창조임을 알 수 있다.
판소리 음악에서의 창조

판소리 창조에 대한 옛 기록

우리는 전장에서 주로 가집의 기록들을 통해서 전통 음악에서의 창조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이에 따르면 평조란 웅심하고 정대하며 화평한 가락을 일컬음이요, 우조란 청장하고 격렬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창조임을 알았다.
그리고 계면조는 애원하고 처창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알맞은 창조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 성가에 있어서의 창조는 가집을 편찬한 사람들의 배려로 그 격조며 형용을 풍부한 비유를 통하여 어느 정도 짐작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현행하는 창곡을 통해서 그 기록이 허황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판소리에서의 창조는 어떤 문헌에도 언급하여 기록한 호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실기진에서도 창조로 구분하여 부르기는 하였으나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지도 못했고 또 이론적인 면을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장에서 전통음악의 창조에 관한 기록을 지루하지만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가집이 편찬되던 당시에도 실은 창조의 명칭이 확연히 결정되지는 않았던 것을 전장에 인용한 ‘가원논가’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가집의 편찬자가 창조의 명칭에 대하여 의식이 명확하지 않았을 때 판소리를 다루는 호사가나 이론가들이 창조의 명칭에 뚜렷한 의식을 가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대 판소리 이론의 대가라고 일컫는 신재효의 ‘광대가’에는 “청원하게 뜨는 목”, “애원성 흐르는 목”, “낙목한천 찬바람이 소슬케 부는 소리”, “왕소군의 출새곡과 척부인의 황곡가라”등은 분명히 ‘계면조’를 형용한 표현으로 볼 수 있고, “불시 에 튀는 목 벽력이 부딪는 듯” “음아질타 호령소리 태산이 흔드는 듯” “도치는 듯”등과 같은 것은 그 비유로 보았을 때 우조와 상통되는 창조를 이름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신오위장 (신재효)의 이러한 막연한 표현과는 달리 그와 같은 시대에 생존했고, 또 그와 문통(文 通)이 있었던, <교방제보 (敎 坊 諸 譜)>의 편찬자인 정현석(鄭 顯 奭)이 신오위장에게 보낸 편지 ‘증동리신군서(贈 桐 里 申 君 序)’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 평성은 웅심하고 화평하여야 한다.
그 규성은 청장하고 격려하여야 한다.
그 곡성은 애원하고 처창하여야 한다.

그 여향은 들보 위에 티끌이 흔들리고 떠가는 백운을 멈추게 해야 한다.
윗글은 정현석이 신오위장에게 이경태(李 慶 泰)라는 광대를 소개하면서 판소리의 혁신안을 제시한 내용 중에 언급된 글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평성, 규성, 곡성, 여향은 각각 판소리의 창조를 구분하여 일컬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네 가지 창조에 대한 기술의 내용과 전장에서 본 전통 성가의 창조에 대한 설명을 대조해 보면 양자 사이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대응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1.1.1.1.1.1.1. 평성-평조
1.1.1.1.1.1.2. 규성-우조
1.1.1.1.1.1.3. 곡성-계면조
1.1.1.1.1.1.4. 여향-?

위에서 ④를 제외하고는 비록 명칭은 다르지만 내용이 완전히 같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것을 보면 판소리는 분명히 전통 성가의 창조를 그대로 섭취하고, 다시 새로운 창조를 하나 더 개발 첨가했다는 사실도 아울러 알 수 있다 하겠다.



판소리 창조에 대한 현대의 기술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신재효나 정현석이 소박하고도 간략하게 판소리 창조에 대해 기술한 이후에 이 방면의 소식이 망연하더니 1940년에 발간된 정노식(鄭 魯 湜)의 <조선(朝鮮 唱 劇 史)>의 「우조 계면조의 분석」이란 항에서 전문이 다음과 같이 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판소리 창조에 대한 현대적인 기술로는 최초의 언급이라 볼 수 있다.
창극조에 있어서 기본 되는 조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은 우조요 기타 일은 계면조니 이것은 결국 목청(音 色)이므로 우조는 어떤 것이며 계면조는 어떤 것이라고 설명하기가 자못 어렵다. 직접 소리를 들어서 지적하여 분별할 수 있는 것이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으나 대체로 그 범위만 들어서 말하자면 우조는 기해단전(氣 海 丹 田) 즉,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이니 담담연온화(淡 淡 然 溫 和)하고도 웅건 청원(雄 建 淸 遠)한 편이고, 계면조는 후설치아간(喉 舌 齒 牙 間)에서 나오는 소리이니 평평연(平 平 然)애원하고도 연미부화(軟 美 浮 華)한 편이다. 소리의 기본인 음색을 잘 조절하여서 신경(神境)에 들어가면 각색의 조가 변화무궁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이상 소개한 <조선창극사>에 언급된 창조는 ‘우조’ ‘계면조’의 두 가지다.
따라서 전통 성가에서 구분되던 3분법 중 ‘평조’가 빠졌고 정현석의 4분법에서는 ‘평조’와 ‘여향’의 두 가지가 빠진 셈이다. 그리고 ‘우조’의 특징은 ①뱃속에서 나는 소리다. ②담담연온화하고 웅건 청원하다고 설명하였다.
또 계면조는 ①후설치아간-알기 쉽게 말하자면 발음기관인 구강(口 腔)에서 나는 소리다. ②평평연애원 하고 연미부화한 편이다.
이러한 <조선창극사>의 기술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기술한 업적으로는 박헌봉(朴 憲 鳳)의 <창악대강(唱 樂 大 綱)>을 들 수 있다.
이 책의 제3장 2절 「우조와 계면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창악에는 기본 조처럼 전하여 오는 우조와 계면조라는 두 조가 있다. 이 말은 양악의 무슨 장조니 단조니 또는 당악이나 아악에서 쓰는 평조니 우조 계면조와는 그 조격(調 格) 이 다르다. 창악에서 우조 계면조라 함은 일종의 창제(唱 制)로 창인이 창하는 그 목청(聲 音)을 단순히 분류한 것으로 즉, 음색과 음량을 청각에 의해 분별한 것이고 어떤 악리적 근거와 악보상의 분석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소리이 한 유별(類 別)이라 할 것이다.
이상은 우조와 계면조의 개념 규정이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①일종의 창제로 음색과 음량을 청각에 의해서 분별한 것이다. ②목청을 단순히 분류한 것으로 악리적 근거와 악보상의 분석이 아니다.
그리하여 우조와 계면조를 다음과 같이 그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 우조
창의 성음이 뱃속에서 우러나오므로 소리가 정중하고 웅화심장함을 바탕으로 하여 온화하면서 씩씩한 느낌을 주는 창법을 말하는 것이다.
⒝ 계면조
성음이 미려청고(美 麗 淸 高)하고 애원처절하며 감상적이다. 한스럽고 고독한 애수가 얽히어 낄 때는 독특한 계면조의 정서 어린 창법이 더욱 효과적인 것이다.
‘우조’와 ‘계면조’의 성격에 대한 이 설명은 각 가집에서 보이는 정통 성가에 관한 기술이나, 앞에서 본 정현석, 정노식 두 사람의 기술 등과 크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창제를 2분법으로 분류한 것은 정노식의 경우와 같은 것도 지적해 둘 일이다. 이<창악대강>에서는 그 두 창조를 다시 아래와 같은 비유로 비교하고 있다.
우조가 화란춘성(花 ? 春 城)의 만물이 성장하는 봄을 상징한다면 계면조는 서리 내리는 가을 달밤에 기러기 소리 지저귀는 가을을 상징한 격조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우조를 만일 남성적이라고 하면 계면조는 여성적이라 할 수 있다.
이상으로 보아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보다는 박헌봉의 <창악대강>에 와서 좀 더 창조의 설명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역대 가집에서 취했던 창조의 3분법에 따른 ‘평조’의 행방이 묘연해졌을 뿐 아니라, 정현석의 4분법에 따른 ‘평조’의 ‘여향’은 문자 그대로 ‘남은 울림’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현석의 서간 문장의 구조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여향’은 다른 3조 즉, ‘평성’ ‘규성’ ‘곡성’과 똑같은 비중을 지닌 것으로 다루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만약에 정현석이 4분법을 취했다면 분명히 전통 성가의 3분법에 논자들(정노식, 박헌봉)은 두 가지의 창법을 빠뜨린 결과를 빚었다고 할 것이다.
현대의 논자들이 이렇듯 2분법을 취하여 ‘평조’를 거론하지 않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헤아릴 길이 없으나, 현행 판소리 창법에는 분명히 ‘우조’도 아니고 ‘계면조’도 아닌 ‘평조’가 불려지고 있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오히려 ‘평조’를 근간으로 하여 문학적인 사설의 내용에 따라서, ‘우조’로도 바뀌고 ‘계면조’로도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평조’가 창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두드러진 변조로 나타나는 ‘우조’나 ‘계면조’를 중요시한 결과로 현대의 논자들이 ‘평조’ 빠뜨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판소리의 창조는 ‘여향’은 아직 미해결로 남게 된다.
과연 이 ‘여향’이 문자 그대로 ‘남은 울림’이냐, 아니면 독립된 창조의 한 종류이냐가 문제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이 방면의 이론가들이 깊은 고찰과 연구 끝에 결정지을 성질의 과제로 남겨 둘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현행 판소리 창법 중에 ‘봉황조(鳳 凰 調)’라는 것이 있는데, 혹시 그것을 정현석이 ‘여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판소리 창조의 분석
앞에서 판소리의 창조가 전통 성가의 3조 즉 ‘평조’ ‘우조’ ‘계면조’ 등을 도입하여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고문헌의 기록을 증거로 고찰한 바 있다.
이러한 명백한 증거를 묵살하고 판소리 음악을 민속 음악이니 저속한 음악이니 하여 그 예술적 가치를 말살하려 했던 종래의 그릇된 논의들이 얼마나 허황하였는가를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정현석의 기록에서 보여준 4분법을 인정한다면 ‘여향’(현행 ‘봉황조’) 이라는 새로운 창조를 발전시켰다는 사실도 아울러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상의 네 가지 창조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보이고자 한다.

평조

이미 소개한 역대 가집에서 이 ‘평조’는 ‘웅심화평(雄 深 和 平)’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률을 ‘정대(正 大)’하다고도 했다.
따라서 이 창조는 ‘정대’하고 ‘화평’하고 ‘웅심’한 조격(調 格)을 지녔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조격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우조’나 ‘계면조’와 비교했을 때에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조’ ‘계면조’ 또는 ‘봉황조’ 가 아닌 창조로 부르는 것이 곧 ‘평조’라고 한다면 이해가 더 빠를지 모르겠다.
따라서 ‘평조’는 판소리 음악의 골격을 이루는 것이고 ‘우조’ ‘계면조’ 는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肢 體)에 비유되는 성질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처럼 ‘평조’는 판소리 음악의 기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두 가지 창조인 ‘우조’나 ‘계면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후술할 바와 같다.

우조

이 ‘우조’는 역대 가집에서 “청장격려(淸 壯 激 勵)”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창극사>에서는 “온화하고도 웅건 청원”한 편이라 했고, <창악대강>에서는 “정중하고 온화하면서 씩씩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이러한 기술들을 종합해 보면 ‘우조’란 “씩씩하고도 장엄한” 조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앞에서 본 ‘평조’와는 뚜렷한 구별이 가능하겠고 후술할 ‘계면조’와도 구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우조’는 다시 ①평우조 ②진우조 ③가곡성우조로 세분된다. ‘평우조’ 는 ‘우조’이기는 하나 비교적 ‘평조’에 가까운 조격이고, ‘진우조’는 ‘우조’의 씩씩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호령조(號 令 調)를 이르며, ‘가곡성우조’는 전통 성가의 하나인 가곡창의 창법을 도입하여 가곡 목으로 부르는 ‘우조’를 말한다

계면조

이이 ‘계면조’에 대한 역대 가집의 기술은 성률이 “오열처창”하다 하였고 조격은 “청이원(淸 而 遠)”하며 “애원처창(哀 怨 悽 愴)”하다고도 하였다. <조선창극사>에서는 “애연(哀 然)하고 연미부화(軟 美 浮 華)”하였으며 <창악대강>에서는 “미려청고(美 麗 淸 高)”하고 애원처절(哀 怨 悽 絶)이라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계면조’란 결국 ‘슬픈’ 가락을 띈 조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본 ‘우조’ 와는 아주 대조적인 창조라는 것도 쉬이 알 수 있으며 ‘평조’의 ‘정대’하고 ‘화평’한 창조와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면조’도 ?평계면 ?단계면 ?진계면으로 세분되는데, ‘평계면’은 비교적 ‘평조’에 가까운 조격으로, ‘우조’에도 ‘평우조’가 있었듯이 ‘계면’에도 ‘평계면’이 있다는 것은 곧 ‘평조’의 보편성을 잘 나타낸다고 하겠다. ‘단계면’은 슬픈 감정이 아직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다만 내면적인 한이 표현되는 조격을 말하며, ‘진계면’은 슬픔이 복받쳐 통곡으로 나타낸 조격을 말한다.

봉황조

전장에서 정현석의 4분법 중 ‘여향’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과제로 남겨야 하겠다는 전제 하에 혹시 그것이 현행 판소리 음악에서 말하는 ‘봉황조’가 아니겠느냐는 시사를 현재 고수의 제일인자로 꼽히는 김명환(金 命 煥)으로부터 받은 바 있어 여기 소개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평.우.계의 3조 이외에 ‘봉황조’라는 것이 있는데, 정현석이 말하는 “요량알운(撓 樑 ? 雲)”이라는 조격은 곧 봉과 황이 속삭이는 ‘봉황조’의 조격과 상사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봉황조’는 판소리만이 아니라 가야금 산조에도 나타나는데, 유일한 연주자로 함동정월(咸 洞 庭 月)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정현석이 만일에 ‘여향’을 독립된 창조로 인정하였다면 판소리 창조에는 ‘봉황조’가 하나 더 추가되어 좋을 것이라는 가설을 잠정적으로 설정하여 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