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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료

소춘대와 한국판소리보존회의 변천사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12/03/05
  • 조회수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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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춘대(원각사)와 한국판소리보존회 변천사

 

고종황제가 등극한지 40년이 되는 1902년에 이를 기념하는 서구식 예식인 "어극 사십년 칭경예식(御極 四十年 稱慶禮式)" 이 준비되었고 칭경예식을 위한 각종 신식제도와 설비가 마련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서구사회의 극장문화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1902년에 고종황제의 내탕금(왕실재정)으로 경희궁 흥화문 앞에 소춘대(笑春臺)라 불린 희대(戱臺)가 건축되었는데 육당 최남선은 이 희대를 일컬어 "조선 최초의 극장이오. 한참시절 런던의 로얄희대, 비엔나의 왕립극장에 비의(比擬)하려한 유일의 국립극장인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¹⁾라고 하였다.

 

서구식 극장을 표방한 희대(戱臺), 즉 소춘대(笑春臺)가 건립됨에 따라 그곳에서 연희할 광대와 기생들을 모아 만든 예인(藝人)들의 결사체라 할 수 있는 협률사(協律社)가 1902년에 결성되었다.

 

이 협률사에는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강용환, 김채만, 장자백, 유성준, 허금파, 강소향 등의 판소리 명창과 경서도 명창으로 가무별감을 지낸 박춘재, 문영수, 이정화, 홍도, 보패 등이 함께 참여하였다.

1903년에 조선을 방문하여 "소춘대"에 행해진 협률사공연을 관람한 프랑스인 브루다레는 그 공연에 대해 "줄타기와 살판, 무동, 탈춤, 창극, 궁중무희의 춤 등 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²⁾ 이를 통해 협률사는 조선팔도예인들이 함께 모여 공연하는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협률사는 1904년 해체되었다가 1906년에 다시 복설되었는데 복설된 협률사는 점차 사사로운 성격의 결사체로 변질되었다.

 

¹⁾ 최남선, 『조선상식문답 속편』(서울: 동명사, 1947), 344쪽

²⁾ 조영규, 『바로잡는 협률사와 원각사』(서울: 민속원, 2008)

 

1908년에 희대를 근거지로해서 이인직(이완용 비서실장)이 신 연극을 표방하며 원각사(圓覺舍)라는 연극장을 개장하자 협률사는 원각사전속예인집단으로서『최병도타령』, 『수궁가』등의 창극공연을 주로 수행했다.

 

'신 연극'을 표방했던 원각사 시절은 협률사 소속의 명창 강용환,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등이 중심이 되어 창극의 전성기였다.

 

1910년에 일제에 의해 한. 일 병탄이 이루어지자 협률사 소속 예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김창환협률사' '송만갑협률사' 등으로 나뉘어 지방순회공연을 하며 명맥을 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진해산하였다.

 

1912년 원각사는 일제에 의해 민족정기를 말살시키기 위해 완전히 철거해버렸다.

 

1933년 5월 10일 여성 명창 김초향(金楚香)의 제안과 순천갑부 김종익의 후원으로 송만갑, 김창룡, 이동백, 정정렬, 한성준 등 판소리 명창들의 중심으로 되어 산조(散調)명인, 경서도 소리 명창, 민속 무용수들이 규합하여 한국 전통음악의 공연과 전수를 목적으로 '조선성악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조선성악연구회'는 첫 작품으로 서울 동양극장에서 창극 <춘향전>을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둔 후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1936년 2월에는 소장파들이 중심이 되어 직속 전용극단 창극 좌를 결성하여 4월에 창단작품으로 <흥부전>을 공연한 후 <숙영낭자전> <별주부전> <배비장전> 등을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조선성악연구회마저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다.

 

1971년에 판소리 무형문화재보유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성악연구회'의 뒤를 잇고 판소리의 계승보급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친목성격의 판소리보존연구회를 결성하여 판소리 유파발표회를 개최하였다.

 

1973년 고(故) 박녹주 명창이 중심이 되어 (사)판소리보존연구회를 결성한 이후 (사)한국판소리보존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춘대 복원의 의미

 

110년 전의 "소춘대"를 오늘날에 복원하는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 최초의 왕립(국립)극장을 복원한다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둘째, "소춘대"에서 남사당패, 판소리, 경서도민요, 궁중무용 등을 함께 공연했던 협률사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단체를 복원하여 전통예술과 예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극장인 "소춘대" 극장과 우리나라 전통예술을 모두 아울렀던 협률사와 같은 전통예술단체의 복원활동은 우리민족문화를 계승하고 겨레의 얼을 되살리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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