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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에서 울려퍼지는 판소리 - 웹진 아르코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11/02/21
  • 조회수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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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에서 울려퍼지는 판소리 ‘사랑가’

글 : 고정숙(러시아 사할린 파견 예술강사)

 


한국전통문화의 전도사라는 사명감을 가슴에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러시아 사할린 땅을 밟은 4월 초. 아직은 눈에 덮여 있는 산들과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가 더욱 그 곳을 낯설게 하였다. 사할린에서의 파견강사 6개월 동안은 비록 짧았지만 나에게 전통예술과 소통의 의미 이상으로 소중한 경험을 가진 기간이었다.
사할린은 러시아에서 가장 비러시아적인 지역이 아닌가 생각한다.
엄연한 러시아연방에 속한 하나의 주(州)이지만 본토와 떨어진 섬이고, 극동(極東)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사할린은 동양적문화가 상당히 많이 흡수, 변형되어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화형태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2차 대전 때 강제 징용된 한인들에 의한 동양적, 특히 한국적인 문화 요소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금발의 서양인들과 흑발의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같이 뒤섞여 살아가면서 본토와는 약간은 이질적인 그들만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영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할린에 사는 금발의 러시아인들에게는 한국적 문화가 그리 낯설지 않다.
이처럼 한국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는 문화적 특징으로 인하여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 예상 외로 높았다. 사할린파견강사인 이은경(가야금) 씨와 나는 사할린한인문화센터를 주축으로 고려인과 러시아인에게 다양한 한국전통예술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강습1


처음 사할린 『새고려신문』을 통해 판소리교육프로그램을 홍보하였을 때 60세는 훨씬 넘어 보이는 한인동포 할머니께서 던진 이 한마디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판소리가 뭐요? 소프라노 같은 거요?”(북한말투)
지난 3년간 사할린으로 파견된 강사들은 가야금, 사물놀이 전공자들이었기 때문에 가야금과 사물놀이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처음 듣는 판소리가 영 낯설었던 모양이다
생긴 건 분명 한국 사람이고 말도 한국말을 쓰는데 그때 느낀 뭔가 모를 이질감은 한편으론 씁쓸하고 한편으론 “이들이 앞으로 부르게 될 판소리 한 대목은 얼마나 값지고 신명날까”해서 나의 사명감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동포들은 어렵지 않게 우리의 판소리와 민요를 부를 수 있었으나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나 러시아인들을 교육할 때는 진땀을 빼곤 했다.

 

강습2


루가워예 제30학교에서는 한국인도 부르기 힘들다는 ‘진도아리랑’을 가르쳐주었다. “문경세제는 웬 고갠가……” 한국말도 못하는 러시아아이들에겐 진도아리랑의 가사는 물론이고 곡조도 꽤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에게는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꺼리로 여겨졌다. 내가 들려주는 진도아리랑 가사 이야기에 아이들이 귀 기울였고 한국에 대해 더 흥미로워 했다. 노래도 곧잘 부르게 되어 한인행사 공연에도 작품을 올릴 정도로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공연2010년 10월 한인문화센터에서 그동안 배운 교육생들이 작은 발표회를 가지게 되었다.
유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눈높이에 맞춰 진행한 판소리 민요 가야금 난타 단소 유아국악 등 다양한 음악으로 우리는 대화했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이 날 이도령 복장을 한 러시아인 나스짜와 춘향이역을 맡을 한인동포 이라가 함께 부른 ‘사랑가’는 내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발표회를 마치고 헤어질 때, 몇 번이고 다시 돌아보며 손 흔들던 루가워예 제30학교 아이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진도아리랑을 흥얼거리겠지……

[기사입력 : 201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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